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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성 관광

notes6324 2025. 9. 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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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성 관광

시간이 멈춘 땅, 고대 바빌론으로 떠나는 랜선 여행: 인류 문명의 요람에서

만나는 3대 유적

'바빌론(Babylon)'. 그 이름은 인류의 기억 속에 웅장한 제국, 신화적 부와 권력, 그리고 문명의 새벽을 상징하는 단어로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심장이자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함무라비 법전이 편찬되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정원이 존재했던 전설의 도시입니다. 2019, 36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인류 전체가 보존해야 할 가치를 공인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유산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라크 전역을 여행경보 4단계, 즉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정부의 허가 없이 방문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변 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상존하기에, 바빌론으로의 여정은 당분간 상상과 지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글은 실제 여행 안내서가 아닌, 시간이 멈춘 땅 바빌론의 심장부로 떠나는 '랜선 여행' 초대장입니다. 우리는 이 가상의 여정을 통해 바빌론의 영광을 증언하는 세 개의 위대한 유적신과 왕을 맞이하던 푸른빛의 관문, 수천 년의 역사를 지켜본 돌의 수호자, 그리고 전 세계적인 신화의 기원이 된 무너진 탑을 깊이 있게 탐험할 것입니다.

푸른빛의 관문 - 이슈타르 문과 행렬의 길

바빌론의 영광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눈부신 푸른빛의 이슈타르 문(Ishtar Gate)입니다. 기원전 6세기경,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명령으로 건설된 이 문은 바빌론 내성으로 들어가는 8개의 성문 중 가장 장대하고 화려한 정문이었습니다.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라, 매년 새해 축제 기간에 바빌론의 주신 마르두크의 신상을 모시고 도시 중심부의 신전으로 향하는 성스러운 '행렬의 길(Processional Way)'이 시작되는 신성한 공간이었습니다

유약 벽돌에 담긴 예술과 신앙

이슈타르 문의 가장 큰 특징은 벽면을 가득 채운 푸른색 유약 벽돌입니다. 이는 단순한 파란색이 아니라, 당시 가장 귀한 보석 중 하나였던 청금석(lapis lazuli)의 색을 모방한 것으로, 신성과 왕의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점토로 벽돌 하나하나를 틀에 찍어 형태를 만들고, 초벌구이 후 복잡한 배합의 유약을 입혀 다시 구워내는 고도의 세라믹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깊고 영롱한 푸른빛과 함께 벽면을 장식한 신성한 동물들의 형상을 생생하게 구현해냈습니다.  

문의 벽에는 세 종류의 동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부조되어 있는데, 각각은 강력한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

무슈후슈(Mušḫuššu): 뱀의 머리, 사자의 몸, 독수리의 발톱을 가진 용으로, 바빌론의 최고신 마르두크를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입니다.  

들소(Aurochs): 강인한 야생 황소는 날씨의 신 아다드를 상징하며, 강력한 힘과 풍요를 의미합니다.  

사자(Lion): 사랑과 다산, 그리고 전쟁의 여신인 이슈타르의 상징으로, 왕권과 도시의 수호자를 의미합니다.  

이 신성한 동물들은 푸른 배경 위에서 교대로 나타나며, 문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경외감과 함께 신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사자들이 호위하는 길

이슈타르 문에서 시작되는 행렬의 길은 약 800미터 이상 뻗어 있었으며, 길 양옆의 벽면은 약 120마리의 사자 부조로 장식되었습니다. 이 사자들은 모두 행렬이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성큼성큼 걷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마치 신과 왕의 행차를 호위하는 듯한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이슈타르 여신의 상징인 사자들이 늘어선 이 길을 걷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신성한 권위와 질서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종교적 체험 그 자체였습니다.  

베를린과 바빌론: 두 개로 나뉜 문

오늘날 이슈타르 문을 온전한 형태로 보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라크가 아닌 독일 베를린으로 가야 합니다. 20세기 초,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가 이끄는 발굴팀이 이슈타르 문의 수많은 벽돌 파편을 발견했고, 당시 오스만 제국의 허가 아래 이 유물들을 독일로 가져갔습니다.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은 이 파편들을 10년 넘게 복원하여 거의 완전한 형태의 이슈타르 문을 재현해냈습니다.  

반면, 원래 문이 서 있던 이라크 바빌론 유적지에는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에 재건된 복제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두 문은 단순한 원본과 복제품의 차이를 넘어, 문화유산의 보존과 소유권에 대한 복잡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라크 정부는 지속적으로 원본 유물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외교적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구분 페르가몬 박물관, 베를린 (Pergamon Museum, Berlin) 바빌론 유적지, 이라크 (Babylon Site, Iraq)

유물 상태

발굴된 진품 조각들을 정교하게 재조립하여 복원  

현대에 만들어진 복제품  

규모

박물관 공간에 맞춰 축소 복원됨 (원래 이중 구조였으나 정문만 전시)  

원래 기초 위에 부분적으로 재현  

재료

청금석 색을 구현한 진품 유약 벽돌 사용  

푸른색 페인트를 칠한 현대 벽돌, 부조의 정교함이 떨어짐  

맥락

본래의 지리적, 건축적 맥락에서 분리된 박물관 전시품  

원래 위치에 존재하여 본래의 규모와 배치를 체감 가능  

이처럼 이슈타르 문의 유산은 두 대륙에 걸쳐 나뉘어 존재합니다. 베를린에서는 바빌로니아 장인들의 경이로운 기술과 예술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만, 그 문이 서 있던 땅의 공기와 역사는 부재합니다. 반대로 바빌론에서는 폐허가 된 도시의 맥락 속에서 문의 위치와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만, 눈앞의 것은 색이 바랜 모조품일 뿐입니다. 이 분열된 현실은 바빌론의 유산 자체가 겪어온 약탈과 훼손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진정한 '원본'의 경험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불멸의 수호자 - 바빌론의 사자상

행렬의 길 한편에는 바빌론의 또 다른 상징이자, 수천 년의 풍파를 견뎌낸 불멸의 수호자, '바빌론의 사자상(Lion of Babylon)'이 위엄 있게 서 있습니다. 2,600년 전 하나의 거대한 검은 현무암으로 조각된 이 석상은 인간을 짓밟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길이 2.6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조각상은 바빌론 유적지에서 가장 유명한 단일 유물 중 하나입니다.  

제국들의 교차점에서 태어난 상징

사자상의 기원은 그 자체로 고대 제국들 간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바빌론에서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고학자들은 조각 양식 등을 근거로 이 석상이 히타이트 제국의 장인들에 의해 제작되었거나, 최소한 그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뒤 바빌론으로 옮겨져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는 바빌론이 단절된 문명이 아니라, 주변 여러 제국과 활발히 교류하며 문화를 융합했던 중심지였음을 시사합니다.  

석상의 상징성은 여러 층위로 해석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자는 왕권의 상징이자 이슈타르 여신을 대표하는 신성한 동물이었습니다. 사자가 인간을 제압하는 모습은 혼돈과 적을 누르는 왕의 절대적인 힘과 신성한 질서를 상징합니다. 특히 석상의 등 부분에는 여신이 앉을 수 있도록 안장을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있어, 이 조각상이 본래 이슈타르 여신상을 모시기 위한 받침대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고대 신상에서 현대 국가의 상징으로

바빌론의 사자상이 흥미로운 점은 그 생명력이 고대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이라크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으며 부활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자상은 오늘날 이라크의 회복력과 국가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라크의 25,000 디나르 지폐는 물론 은행 로고, 관광 기념품 등 일상 곳곳에서 바빌론의 사자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의 진화는 문화유산이 어떻게 과거의 종교적, 정치적 맥락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필요에 따라 재해석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입니다. 고대 이슈타르 여신의 권위를 상징했던 사자는 이제 이슬람 문화권의 현대 국가인 이라크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적 자부심을 대표하는 세속적인 상징으로 거듭났습니다. 따라서 이 석상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단순히 오래된 돌을 지키는 것을 넘어, 현대 이라크의 국가 정체성의 핵심을 지키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사자상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적인 침식과 유적지를 찾은 방문객들이 무분별하게 올라타면서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한때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보호받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013, 세계유산기금(WMF)과 이라크 문화재청은 협력하여 석상의 위태로운 받침대를 보강하고 표면을 세척하는 등 대대적인 보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훼손된 인류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국제적 연대의 소중한 결실이었습니다.

전설의 메아리 - 에테멘앙키와 바벨탑

바빌론의 유적 중 가장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류의 상상력에 가장 거대한 영향을 미친 곳이 바로 에테멘앙키(Etemenanki)의 터입니다.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Tower of Babel)' 이야기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오만에 신이 분노하여 언어를 흩어버렸다는 신화는 서구 문명권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이 바벨탑의 신화적 원형이 된 건축물이 바빌론의 심장부에 솟아 있던 지구라트, 에테멘앙키입니다.

신화와 역사의 만남

바빌로니아인들에게 에테멘앙키는 신에 대한 도전이나 오만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이름이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라는 뜻을 가졌듯, 땅과 하늘을 잇는 신성한 통로이자 우주의 중심축으로 여겨졌습니다. 바빌론의 주신 마르두크에게 바쳐진 이 거대한 계단식 탑은 함무라비 시대에 처음 지어졌고,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더욱 웅장하게 재건되었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 시대의 기록을 담은 '바벨탑 석비'와 같은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테멘앙키는 정사각형의 기초 위에 여러 층의 단을 쌓아 올린 형태로, 꼭대기 신전까지 포함하면 그 높이가 약 66미터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바빌론으로 끌려와 유수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이 거대한 건축물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것이 훗날 바벨탑 신화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폐허가 들려주는 이야기

오늘날 에테멘앙키가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탑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물에 잠긴 축대와 거대한 흙더미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시각적으로는 이슈타르 문이나 사자상에 비해 큰 감흥을 주기 어렵지만, 이곳의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이곳 역시 복원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으나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에테멘앙키의 유산은 건축물의 물리적 존재가 그 문화적 영향력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탑 자체는 사라져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 탑이 불러일으킨 '바벨탑'이라는 이야기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신화 중 하나가 되어 2,500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언어의 기원, 인간과 신의 관계, 문명의 한계 등 철학적 주제를 담은 이 이야기는 수많은 예술과 문학 작품에 영감을 주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었습니다. 결국 에테멘앙키는 물리적 파괴를 통해 오히려 신화라는 불멸의 생명을 얻은 셈입니다. 따라서 이 폐허의 터에 서는 것은 무너진 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정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탄생한 진원지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바빌론의 영원한 유산

우리가 랜선으로 여행한 바빌론의 세 유적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 고대 도시의 영광과 비극을 증언합니다. 이슈타르 문은 바빌론의 눈부신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지만, 현재는 두 개로 나뉘어 그 상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빌론의 사자상은 고대의 신성한 힘이 현대 국가의 상징으로 재탄생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생명력을 과시합니다. 그리고 에테멘앙키의 터는 물리적 실체보다 강력한 신화의 힘을 통해 인류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남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바빌론은 단일한 고대 유적지가 아닙니다.

그곳에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영광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새긴 벽돌로 유적을 덧칠하며 고대 왕의 재림을 꿈꿨던 사담 후세인의 왜곡된 야망이 겹쳐 있습니다. 또한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 기지로 사용되면서 고대 유적이 중장비에 파괴되고 유물 파편이 모래주머니에 담기는 비극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바빌론은 고대와 현대의 역사가 겹겹이 쌓인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와 같은 땅입니다.  

이라크 정부의 36년에 걸친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바빌론의 미래를 위한 희망의 신호탄입니다. 이는 이 위대한 유산이 더 이상 한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책임 아래 보호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언젠가 전쟁의 상처가 아물고 평화가 정착하여,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시민들이 이 위대한 문명의 요람을 안전하고 경건하게 직접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이 가상의 여정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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