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와현(臥峴)해수욕장 관광
와현의 다섯 가지 얼굴: 거제의 고요한 해안 보석에 대한 완벽 가이드
서문: 와현의 속삭이는 모래, 회복과 아름다움의 초상
거제도, 그 이름은 종종 '자글자글' 파도에 구르는 검은 몽돌의 소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섬의 남동쪽, 일운면의 한 자락에는 전혀 다른 감촉과 소리를 지닌 해변이 숨 쉬고 있다. 바로 와현(臥峴) 모래숲 해수욕장이다. 이곳의 첫인상은 '고요함'이다. 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내륙형 해안은 거친 파도를 잠재워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을 만들어낸다. 발밑에서는 몽돌 대신 햇살 아래 탐스럽게 반짝이는 고운 모래가 부드럽게 발가락 사이를 간질인다. 이곳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모래성을 쌓고, 연인들이 호젓한 데이트를 즐기며, 여행자들이 소란을 피해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거제의 숨겨진 안식처다.
길이 510m, 폭 30m의 아담한 백사장은 완만한 경사와 얕은 수심을 지녀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방문객들은 시끄럽지 않고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숙소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진정한 힐링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맨발로 자연을 느끼며 걷는 '어싱(Earthing)'의 명소로도 주목받고 있는데, 파도가 다져놓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걷는 경험은 와현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꼽힌다.
그러나 와현의 평화로운 풍경 뒤에는 거대한 자연의 힘과 그에 맞선 인간의 끈질긴 회복력이 빚어낸 드라마틱한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2003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는 이곳 와현 마을을 송두리째 휩쓸었다. 해안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들은 거대한 파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당시의 사진은 갈대숲이 우거지고 포근했던 옛 마을의 모습을 아련하게 증언한다. 이 비극은 와현 해수욕장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역설적이게도, 파괴의 주체였던 자연은 와현에 예상치 못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해일을 동반한 파도가 해안도로와 주택가를 덮치면서 엄청난 양의 모래를 백사장으로 밀어 올린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후, 와현 해수욕장은 이전보다 훨씬 더 넓고 풍성한 모래사장을 갖게 되었다. 주민들은 상처를 딛고 육지 쪽으로 마을을 옮겨 새로운 공동체를 일구었고, 재해의 기억은 '매미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를 전한다.
따라서 와현을 여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해변을 즐기는 것을 넘어, 자연의 거대한 힘과 그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일궈낸 인간의 창의성, 그리고 회복의 서사를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와현뿐만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탐험할 외도와 공곶이 등 주변 명소들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본 가이드는 와현 해수욕장을 단순한 해수욕장이 아닌, 거제의 가장 심오한 경험으로 향하는 완벽하고 고요한 베이스캠프로 제시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소개할 '다섯 가지 선택'은 자연과 인간의 예술, 지역의 삶, 그리고 숨 막히는 조망을 아우르는 여정으로, 와현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매력의 면면을 깊이 있게 탐색할 것이다.
제1부: 선(選) 1: 와현, 고요한 모래의 숲에서 숨 고르기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와현 해수욕장 그 자체다. 이곳은 다른 명소로 떠나기 위한 경유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히 머물며 그 가치를 음미해야 할 핵심적인 공간이다. 와현의 진정한 매력은 '활동적인 고요함'에 있다. 단순히 텅 비어 있는 미개발의 해변이 아니라, 평화롭고 회복적인 활동을 위해 의도적으로 조성되고 가꾸어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모래의 감촉과 호수 같은 평온함
와현 해수욕장을 정의하는 가장 큰 특징은 단연 모래다. 거제의 다른 유명 해수욕장들이 대부분 몽돌로 이루어져 파도에 돌 구르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것과 달리, 와현은 지극히 부드럽고 고운 모래로 가득하다. 한 여행작가는 몽돌을 싫어하는 친구들과는 늘 와현을 찾았다고 회고할 만큼, 이곳의 모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모래는 '탐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매력적이며, 아이들이 넘어져도 다칠 염려 없이 마음껏 모래 장난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부드러움은 '어싱(맨발 걷기)'이라는 새로운 트렌드와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파도가 쓸고 지나간 자리는 적당히 단단해져 발에 닿는 감촉이 숲의 흙길보다 부드럽고, 그 위를 걸으면 마치 거대한 캔버스에 나만의 발자국을 새기는 듯한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지리적 특성 또한 와현의 고요함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섬과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형 만(灣)의 형태를 하고 있어, 거친 바깥 파도가 직접 닿지 않는다. 덕분에 해변의 물결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는 수영이 서툰 아이들에게 안전한 물놀이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조용한 분위기를 찾는 연인들에게 최고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는 이유가 된다.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관광객이 적어 여유롭고 깨끗하다는 방문객들의 평가는 이러한 와현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모래 위, 그리고 방파제에서의 활동들
와현의 '활동적인 고요함'은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다. 해변에서는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들의 평화로운 풍경이 일상적이다. 해가 질 무렵이면 해변을 따라 산책하는 이들의 실루엣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밤이 되면 인근 숙소에서는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 수 있다.
좀 더 활동적인 휴식을 원한다면 방파제로 향하면 된다. 와현 해수욕장에는 낚시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포인트들이 잘 알려져 있다. 해변과 부두를 가르는 작은 방파제(A포인트)는 테트라포드를 타는 것이 유리하며, 해수욕장 백사장에서는 피서객이 없는 시간에 장타 원투낚시로 도다리나 노래미를 낚을 수 있다(B, C포인트). 릴찌낚시, 루어낚시 등 다양한 기법으로 여러 어종을 만날 수 있어, 강태공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태풍의 상처와 잘 갖춰진 편의시설
오늘날 와현의 편안함은 태풍 '매미'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결과물이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매미공원'은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공원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와현 해변과 먼바다를 조망하다 보면, 자연의 파괴력과 그를 극복한 인간의 의지가 공존하는 이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무료 주차장, 깨끗하게 관리되는 3개의 화장실, 샤워장 등 기본 인프라가 훌륭하며, 해변가에는 편의점, 식당, 카페 등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장시간 머물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이는 와현이 단순히 자연 발생적인 휴식처가 아니라, 방문객의 편의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관리되는 목적지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와현 해수욕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여행지로서, 고요함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모래의 숲'이다.
제2부: 선(選) 2: 바다 위 파라다이스를 향한 항해 - 외도 보타니아 & 해금강
와현 해수욕장이 고요한 휴식을 위한 완벽한 베이스캠프라면, 그곳에서 출발하는 짧은 항해는 거제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두 개의 상징적인 파라다이스로 우리를 이끈다. 인간의 열정과 예술혼이 빚어낸 해상 식물원 '외도 보타니아'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의 조각품 '거제 해금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유람선이 이 두 곳을 하나의 코스로 묶어 운행하기에, 이 여정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아름다움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여정을 시작하기에 와현만큼 좋은 출발점은 없다. 와현 유람선 선착장은 여러 선착장 중 외도와의 거리가 가장 짧아, 여행자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편리한 항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빚어낸 에덴동산, 외도 보타니아
외도 보타니아는 한 부부의 꿈과 헌신이 척박한 바위섬을 지상의 낙원으로 탈바꿈시킨 기적의 공간이다. 1969년, 낚시를 왔다가 풍랑을 만나 우연히 섬에 머물게 된 故 이창호 선생과 그의 아내 최호숙 여사는 이 섬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전기, 수도, 전화도 없던 외딴 섬을 매입한 부부는 처음에는 밀감 농장과 돼지 사육을 시도했으나 연이어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실의에 빠져있을 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방풍림으로 심었던 8,000그루의 편백나무였다. 이 나무들을 보며 부부는 식물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아내 최호숙 여사가 식물원 구상과 수목 배치를 맡았고, 남편은 30여 년간 땀과 정성으로 섬을 가꾸었다. 마침내 1995년 4월, '외도해상농원'의 문을 열었고, 개원 2년 만에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보타니아(Botania)'는 식물(Botany)과 낙원(Utopia)의 합성어로, 이름 그대로 '식물의 천국'을 의미한다.
유람선에서 내려 섬에 발을 딛는 순간, 방문객은 마치 지중해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에 압도된다.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으로, 잘 가꾸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채로운 테마의 공간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 비너스 가든: 외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지중해풍 건축물과 비너스 조각상들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천국의 계단: 8,000그루의 편백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이 계단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포토존이다.
- 전망대: 전망대에 서면 거제 해금강, 홍도, 대마도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경관이 펼쳐진다.
- 다양한 식생: 온난하고 비가 많은 해양성 기후 덕분에 선인장, 코코스야자수 등 1,000여 종에 달하는 희귀 아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어, 섬 전체가 살아있는 식물도감과도 같다.
외도는 단순한 식물원을 넘어, 한 인간의 집념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서사 그 자체다.
바다가 조각한 금강산, 거제 해금강
외도에서 인간 창조의 극치를 경험했다면, 유람선이 다음으로 향하는 거제 해금강에서는 자연이 빚어낸 원초적이고 장엄한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된다. 해금강은 강(江)이 아니라, 해발 116m의 바위섬으로, 그 경치가 마치 금강산의 해금강과 견줄 만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71년 대한민국 명승 제2호로 지정된 이곳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보석으로 꼽힌다.
해금강은 육지에서 보는 모습과 바다에서 유람선을 타고 보는 모습이 전혀 달라, 국내 최초로 유람선이 운행된 곳이기도 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은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거대한 조각 작품이다.
- 십자동굴(十字洞窟): 해금강 관광의 백미로 꼽히는 해식동굴이다. 썰물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동굴 안으로 들어서서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십(十)자 모양으로 보여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파도가 거세 1년 중 관람 가능한 날이 40여 일에 불과해, 이 십자하늘을 보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 사자바위: 사자가 포효하는 듯한 형상의 바위로, 한국의 5대 일출 명소 중 하나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는 장관을 이룬다.
- 다양한 기암괴석: 이 외에도 해와 달이 봉우리에 걸린다는 일월봉, 촛대바위, 미륵바위 등 저마다의 이름과 이야기를 품은 바위들이 절경을 이룬다.
해금강에는 중국 진시황제의 불로초 전설도 깃들어 있다. 영생을 꿈꾸던 진시황이 보낸 서복(서불)이 동남동녀 3천 명을 이끌고 이곳에 와 '서불과차(徐巿過此)'라는 글자를 새겼다는 이야기는 이곳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이처럼 외도 보타니아와 해금강을 함께 둘러보는 여정은, 인간이 정성으로 빚어낸 '구축된 낙원'과 자연이 시간으로 조각한 '태초의 낙원'을 동시에 경험하는,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여행이다. 잘 짜인 정원의 아름다움과 거친 바위의 장엄함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사색을 안겨준다.
실용 가이드: 유람선 예약 및 탑승
외도와 해금강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유람선 탑승이 필수적이다. 여러 선착장에서 유람선이 출발하지만, 와현, 구조라, 장승포, 도장포, 해금강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예약 사이트(예:oedocruise.com, hggtour.net)를 통해 미리 예약하면 매진 걱정 없이 원하는 시간에 탑승할 수 있다. 유람선 요금과 별도로 외도 입장료(성인 기준 11,000원)는 유람선사 매표소에서 승선권 발권 시 함께 결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유람선 선착장 | 외도/해금강 근접성 | 주요 운항 코스 | 특징 및 장점 |
와현 선착장 | 최상 (외도와 최단 거리) | 외도 + 해금강 | 가장 짧은 항해 시간으로 이동 피로 최소화 |
구조라 선착장 | 상 (와현 다음으로 가까움) | 외도 + 해금강 | 와현과 차로 3분 거리, 접근성 우수 |
도장포 선착장 | 중 (바람의 언덕 인근) | 외도 + 해금강 | 바람의 언덕, 신선대 관광과 연계 용이 |
해금강 선착장 | 상 (해금강과 최단 거리) | 외도 + 해금강 | 해금강을 가장 가까이서 출발, 제트보트 등 옵션 가능 |
장승포/지세포 선착장 | 중하 (거제 시내권) | 외도 + 해금강 | 거제 시내에서 출발 시 편리, 항해 시간은 상대적으로 김 |
제3부: 선(選) 3: 노부부의 땀과 시간이 빚은 비밀의 화원, 공곶이
외도 보타니아가 한 사업가의 원대한 꿈이 빚어낸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공공의 낙원'이라면, 와현 해수욕장 너머 예구마을 끝자락에 숨어있는 공곶이는 한 노부부의 평생에 걸친 땀과 헌신으로 완성된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한 '비밀의 화원'이다. 공곶이를 방문하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한 부부의 삶이 녹아있는 살아있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에 경의를 표하는 순례의 여정과 같다.
한 부부의 헌신으로 태어난 정원
공곶이의 이야기는 1969년, 강명식, 지상악 부부가 척박한 비탈의 황무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된다. '공곶이'라는 이름은 지형이 궁둥이(尻)처럼 바다로 툭 튀어나온 곶(串)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어떤 농기계도 사용할 수 없었던 이곳을, 부부는 오직 호미와 삽, 곡괭이만을 이용해 한 뼘 한 뼘 일구어 나갔다.
그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5년간 공들여 심은 2,000여 그루의 감귤나무가 1976년 혹독한 한파로 모두 얼어 죽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부부는 좌절하지 않고, 그 자리에 동백나무를 심으며 다시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반세기에 걸친 노부부의 피와 땀은 마침내 척박한 땅을 약 50여 종의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계단식 다랭이 농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위대한 창조의 가장 감동적인 지점은 노부부의 너그러운 마음에 있다. 거제 8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이 개인 정원은 아무런 대가 없이 대중에게 개방된다. 입장료도, 매표소도 없다. 단지 정원 한쪽에 놓인 무인 판매대에서 수선화나 농작물을 판매하는 것이 전부다.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노부부의 삶의 터전이자 일터에 초대받는 것이며, 그들의 순수한 나눔 정신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다.
화원으로 향하는 순례길
공곶이의 매력은 목적지뿐만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과정에도 있다. 예구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5분에서 20분가량 산길을 오르는 것으로 여정은 시작된다. 이 오르막길은 다소 가파르지만, 점차 높아지는 고도에 따라 펼쳐지는 와현과 예구마을의 해안 풍경이 땀을 식혀준다. 거동이 불편한 방문객을 위해 해변을 따라 걷는 비교적 평탄한 대체 경로도 마련되어 있다.
오르막 끝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서는 마법 같은 길이 펼쳐진다.
- 동백나무 터널: 수십 년 자란 동백나무들이 아치를 이루어 짙은 그늘을 만드는 터널은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2~3월 동백꽃이 만개할 때는 붉은 꽃잎이 카펫처럼 깔려 장관을 이룬다.
- 천국의 계단: 동백 터널을 지나면 나타나는 333개의 돌계단은 '천국의 계단'이라 불린다. 이 계단 역시 노부부가 직접 돌을 날라 쌓은 것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 그리고 몽돌해변의 풍경
공곶이는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뽐낸다.
- 봄 (3월~4월): 공곶이가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시기다. 계단식 밭을 가득 메운 수만 송이의 노란 수선화가 푸른 남해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의 전설처럼,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된다.
- 겨울 (2월~3월): 수선화가 피기 전, 이곳의 주인공은 동백꽃이다.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이 겨울 바다의 차가운 풍경에 따스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기나긴 계단을 모두 내려오면, 여정의 끝에는 고요한 몽돌해변이 기다리고 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몽돌 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다 보면, 바다 건너편에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내도(內島)의 평화로운 모습이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처럼 공곶이는 외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창조 의지를 보여준다. 외도가 자본과 원대한 계획으로 완성된 '작품'이라면, 공곶이는 두 사람의 맨손과 평생의 시간으로 일궈낸 '삶' 그 자체다. 두 곳을 모두 경험하는 여행자는 '낙원을 만드는 방식'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철학을 비교하며 더욱 풍성하고 사려 깊은 여행을 완성할 수 있다.
제4부: 선(選) 4: 해변의 활력과 낭만 - 미식, 카페, 그리고 수상 레저
고요한 휴식과 장엄한 자연 탐험이 와현의 내면을 채우는 요소라면, 해변을 따라 펼쳐지는 다채로운 미식과 세련된 카페 문화, 그리고 역동적인 수상 레저는 와현의 외면을 빛내는 활력과 낭만의 원천이다. 와현의 상업 시설들은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해변 환경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곳에서의 경험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든다. 식사와 커피, 레저 활동 모두가 바다라는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시너지를 내며, 와현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한다.
남해의 맛을 탐하다: 해변의 미식
와현 해수욕장과 그 주변에는 남해의 신선함을 그대로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즐기는 식사는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 된다.
- 바다 앞 횟집의 낭만: 와현 해변 바로 앞에는 여러 횟집이 늘어서 있다. 그중 '어가횟집'은 직접 운영하는 배로 낚시 체험을 제공하고, 갓 잡은 생선으로 회와 매운탕을 끓여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미식과 체험을 결합한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싱싱한 자연산 회 한 점을 맛보는 것은 와현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 특색 있는 로컬 푸드: 평범한 해산물 식당을 넘어, 와현리에는 개성 있는 맛집들도 숨어있다. 대표적인 곳이 '예가'이다. 이곳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건강한 해산물 가정식을 선보이는 곳으로, 특히 신선한 성게알을 듬뿍 넣은 성게비빔밥이 별미로 꼽힌다. 아침이나 점심 식사로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아,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오션뷰를 품은 카페 문화
거제에서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자리 잡은 카페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관광 명소 역할을 하며, 여행자들에게 휴식과 함께 최고의 전망, 그리고 '인생샷'을 남길 기회를 제공한다. 와현 해수욕장 주변 역시 이러한 오션뷰 카페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다.
- 해변 바로 앞의 감성 카페: 와현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매력적인 카페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카페 스터닝뷰(Cafe Stunning View)'는 이름처럼 멋진 해변 전망을 자랑하는 테라스가 있으며, 귀여운 반려견과 아기자기한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브런치를 즐기고 싶다면 '블랑블루(Blanc Blue)'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 주변의 명소 카페: 차로 조금만 이동하면 거제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카페들을 만날 수 있다. 구조라 해수욕장 인근의 '외도널서리'는 '플랜테리어(Planterior)' 콘셉트의 대표주자로, 거대한 온실 속에 수많은 식물과 함께 꾸며진 공간이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식물을 사랑하고 감각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필수 코스다.
파도를 가르는 역동적인 즐거움: 수상 레저
잔잔한 와현의 바다는 고요한 휴식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해양 레포츠를 즐기기에도 최적의 무대를 제공한다. 해수욕장에서는 안전을 위해 수영 구역과 수상 레저 구역을 구분해 놓아, 방문객들이 안심하고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 짜릿한 해양 액티비티: 와현 해수욕장에서는 제트스키를 비롯해, 여러 명이 함께 타는 바나나보트, 땅콩보트, 그리고 하늘을 나는 듯한 스릴을 선사하는 플라잉피시 등 다양한 수상 레저 기구를 체험할 수 있다. 해변에는 전문 업체들이 상주하며 장비 대여와 안전 관리를 책임지고 있어 초보자도 쉽게 도전해볼 수 있다.
- 육지에서의 스릴, ATV: 바다에서의 활동이 지겹다면, 인근에 위치한 ATV 체험장에서 울퉁불퉁한 산길을 거침없이 달리며 또 다른 종류의 스릴을 만끽할 수도 있다.
- 안전을 위한 조언: 즐거움과 함께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 와현 해수욕장에서 수상오토바이와 레저기구 간의 충돌 사고가 있었던 만큼 , 활동 시에는 반드시 안전 수칙을 준수하고, 지정된 구역 내에서만 레저를 즐겨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고 구명조끼 등 안전 장비를 철저히 착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처럼 와현의 상업 시설들은 해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여행의 경험을 다채롭게 확장시킨다. 신선한 미식, 감성적인 카페, 짜릿한 레저는 모두 '바다'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며, 와현을 단순한 풍경 감상을 넘어 오감으로 즐기는 활기 넘치는 목적지로 만들어준다.
제5부: 선(選) 5: 망산에 올라 시야를 넓히다 - 와현봉수대와 서이말등대
와현에서의 여정이 바다와 모래사장에서 시작해 인간이 만든 정원과 자연이 빚은 절경을 거쳐, 활기찬 해변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었다면, 그 마지막 장은 이 모든 것을 한눈에 조망하며 여정을 완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와현 해수욕장 인근 망산(望山) 정상에 오르는 것은 단순히 멋진 경치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지금까지 밟아온 모든 장소들을 하나의 거대한 지도 위에 펼쳐놓고 그 관계를 이해하며, 여행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완성하는 지적인 클라이맥스다.
정상으로의 짧고 보람 있는 여정
와현봉수대(臥峴烽燧臺)가 위치한 망산(해발 303m) 정상까지의 등반은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약 15분 정도만 오르면 충분히 정상에 닿을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탁 트인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이 짧은 오름은 지금까지의 해수면 높이에서의 시선을 극적으로 전환시키며,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파노라마 뷰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역사의 흔적, 봉수대와 등대
망산 정상부에는 과거와 현재의 두 '눈'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 와현봉수대 (조선의 통신망):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해 급한 소식을 중앙으로 전하던 조선 시대의 군사 통신 시설이다. 와현봉수대는 인근의 지세포진(知世浦鎭)에 속해 있던 중요 거점으로, 왜구의 침입 등 국가의 위급 상황을 알리는 최전선의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 이곳에는 산 정상부를 다듬어 2단으로 쌓아 올린 석축과 원형의 방호벽, 그리고 당시 봉수군들이 머물렀을 건물 터의 흔적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 돌무더기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 수백 년 전 이곳에서 밤낮으로 불을 피우며 바다를 지켰을 병사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 서이말등대 (현대의 길잡이): 봉수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현대의 길잡이인 서이말등대(鼠耳末燈臺)가 서 있다. 1944년 1월 처음 불을 밝힌 이 등대는 20초에 한 번씩 불빛을 비추며 지금도 거제 앞바다를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서이말'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쥐의 귀 끝'을 닮은 반도의 지형에서 유래했다. 낡은 봉수대와 굳건한 등대의 공존은 시간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시야의 정점: 모든 것을 아우르는 파노라마
이곳에 오르는 진짜 이유는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압도적인 조망 때문이다. 서이말 전망대와 봉수대 정상에 서면, 이번 여행에서 경험했던 모든 장소들이 하나의 장대한 풍경으로 통합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발아래로는 우리가 출발했던 와현 해수욕장이 아늑한 호수처럼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는 구조라 해수욕장의 긴 해안선이 이어진다.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던지면, 유람선을 타고 건너갔던 외도 보타니아와 그 곁을 지키는 내도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그 너머로 거제 해금강의 기암괴석 실루엣과 바람의 언덕까지 아스라이 보이며, 심지어는 국경 너머 일본의 대마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단순한 풍경 감상을 넘어선다. 흩어져 있던 점(장소)들이 선으로 연결되고, 마침내 하나의 면(지리적 이해)으로 완성되는 지적인 희열을 선사한다. '아, 우리가 저곳에서 출발해 저 섬을 건너, 지금 이곳에서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구나.' 이 깨달음의 순간, 여행의 모든 경험은 비로소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마음에 새겨진다. 와현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바로 이 망산에 올라,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거제의 광활한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아 가는 것이다.
결론: 와현의 지워지지 않는 매력
거제 와현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한 5선의 여정은 하나의 해변이 품을 수 있는 다채로운 매력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와현은 단순히 머물다 가는 해수욕장이 아니라, 거제의 정수를 경험하는 깊이 있는 여행의 시작점이자 중심축이다.
첫째, **고요한 모래의 숲(선택 1)**으로서 와현은 그 자체로 완벽한 휴식처다. 부드러운 모래와 잔잔한 파도는 번잡함을 떠나 온전한 쉼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둘째, **바다 위 파라다이스로 향하는 관문(선택 2)**으로서 와현은 인간이 만든 지상낙원 외도와 자연이 빚은 해상절경 해금강으로 떠나는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항구를 품고 있다. 셋째, **인간 헌신의 증거(선택 3)**로서 와현 인근의 공곶이는 한 노부부의 평생이 담긴 비밀의 화원을 통해 우리에게 노동의 숭고함과 나눔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넷째, **활력과 낭만의 허브(선택 4)**로서 와현은 신선한 미식, 감성적인 카페, 역동적인 수상 레저를 통해 여행에 생동감과 즐거움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궁극적 조망의 정점(선택 5)**인 와현봉수대는 흩어져 있던 모든 경험을 하나의 파노라마로 엮어주며 여행에 완결성을 부여한다.
이 모든 여정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자연의 거대한 힘과 그에 응답하는 인간의 창의성 및 회복력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태풍 '매미'라는 자연의 파괴력이 역설적으로 더 넓은 백사장을 만들어냈고, 그 상처 위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마을을 세웠다. 척박한 바위섬과 황무지 비탈은 두 부부의 집념으로 각각 화려한 식물원과 소박한 꽃밭으로 다시 태어났다. 와현과 그 주변은 이처럼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파괴하고, 또 서로를 통해 재창조되는 역동적인 관계의 살아있는 증거다.
결국 와현을 여행한다는 것은 부드러운 모래를 맨발로 느끼고, 푸른 바다를 유람하며, 한평생 가꾼 정원을 거닐고, 마침내 산에 올라 그 모든 풍경을 가슴에 담는 일이다. 이 다섯 가지 얼굴 속에 담긴 깊고 풍성한 이야기를 발견할 때, 와현은 단순한 여름 피서지를 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의미의 여행지로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와현 여행 한눈에 보기
선택 (Selection) | 추천 대상 (Best Suited For) | 최적 시기 (Optimal Season) | 예상 소요 시간 (Estimated Duration) | 전문가 팁 (Expert Tip) |
1. 와현 해수욕장 | 가족, 연인, 평온한 휴식을 원하는 여행자 | 여름(해수욕), 연중(산책) | 2~4시간 | 썰물 때 파도가 다져놓은 단단한 모래 위에서 '맨발 걷기(어싱)'를 꼭 체험해볼 것. |
2. 외도 & 해금강 | 사진 애호가, 연인, 가족, 한국 최고의 절경을 보고 싶은 누구나 | 연중(유람선), 봄/가을(쾌적한 날씨) | 반나절 (약 4~5시간) | 인파를 피하고 싶다면 하루 중 첫 유람선을 예약하는 것이 유리하다. 와현 선착장이 외도와 가장 가깝다. |
3. 공곶이 | 정원 애호가, 걷기 여행자, 사색을 즐기는 이 | 봄(3-4월, 수선화), 겨울(2-3월, 동백) | 2~3시간 | 계단이 많으므로 반드시 편한 신발을 착용할 것. 노부부의 노고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무인 판매대를 이용해보자. |
4. 미식/카페/레저 | 미식가, SNS 사용자, 활동적인 여행자 | 연중 | 다양함 | '예가'의 성게비빔밥과 같은 지역 특색 메뉴를 맛보고, 해변이 보이는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자. |
5. 와현봉수대 & 등대 | 등산 초보자, 역사 애호가, 탁 트인 전망을 선호하는 이 | 연중 (맑은 날 조망 최상) | 1.5~2시간 | 와현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방문하여, 지나온 모든 장소를 한눈에 담으며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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