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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재약산(載藥山)관광

notes6324 2025. 7. 2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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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재약산(載藥山)관광

재약산의 다섯 얼굴: 영남알프스의 심장을 탐험하는 완벽 가이드

, 그 이상의 이야기

영남의 지붕이라 불리는 장대한 산군, 영남알프스의 심장부에 재약산(載藥山)이 솟아 있다. 재약산은 단순히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다. 그것은 천황산이라는 형제 같은 봉우리를 거느리고, 사자평이라는 광활한 억새 평원을 품으며, 표충사라는 천년의 역사를 지켜온 거대한 서사의 주인공이다. 이곳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의 여정이 아닌, 여러 겹의 시간을 동시에 여행하는 것과 같다. 호국불교의 정신이 깃든 성지를 순례하는 영적인 여정, 가파른 능선을 오르내리며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는 육체적인 도전,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계곡의 신비를 파헤치는 자연과의 교감, 하늘 아래 첫 교실의 아련한 흔적을 더듬는 잃어버린 역사와의 조우, 그리고 산행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산기슭의 맛과 멋을 탐미하는 미식 기행까지. 재약산은 이 모든 경험을 여행자에게 아낌없이 내어준다.  

이 가이드는 재약산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매력을 다섯 가지의 얼굴로 나누어 깊이 있게 탐색한다. 첫 번째 얼굴은 재약산의 정신적 지주인 '영혼의 안식처, 표충사'. 두 번째는 산의 웅장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영남알프스의 숨결, 두 봉우리'를 오르는 길이다. 세 번째는 바람의 속삭임과 잊힌 이야기가 공존하는 '속삭이는 평원, 사자평'이다. 네 번째는 자연이 빚어낸 경이로운 풍경, '자연의 신비, 계곡과 폭포'를 만나는 여정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여정의 맛, 산기슭의 미식'이다.

이 길은 노련한 산악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얼음골 케이블카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의 풍경을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의 발치에 가져다주며, 누구나 영남알프스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당신이 어떤 여행자이든, 재약산은 당신만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그 다섯 얼굴을 마주하러 떠나보자.  

I. 영혼의 안식처: 천년고찰 표충사 순례

재약산 여행은 표충사에서 시작하여 표충사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은 단순한 사찰을 넘어 재약산 일대의 역사와 정신을 품고 있는 거대한 뿌리이자 심장이다. 밀양 8경 중 하나로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표충사는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여행지다.  

1.1. 시간의 문을 열다: 표충사 경내 산책

표충사로 향하는 길은 세속의 번잡함에서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서는 정화의 과정과 같다.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즐비한 상가 주차장을 지나면, 속세의 모든 번뇌를 내려놓으라는 듯 장엄하게 서 있는 일주문(一柱門)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일주문을 통과하는 순간, 공기의 밀도부터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람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 홍제교를 건너면 비로소 표충사의 고즈넉한 경내가 펼쳐진다.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재약산의 험준한 바위 봉우리들을 병풍처럼 두른 사찰의 압도적인 풍광이다. 대광전, 팔상전 등 고풍스러운 전각들은 오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가을, 울긋불긋한 단풍이 고색창연한 목조 건물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며, 수많은 사진작가의 발길을 이끈다. 봄에는 신록이,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화려한 배롱나무꽃이, 겨울에는 백설이 덮인 설경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표충사 사계(表忠寺 四季)'라는 명성을 실감하게 한다. 경내를 천천히 거닐며, 전각의 처마 끝에 걸린 재약산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보는 것은 표충사가 선사하는 첫 번째 선물이다.  

1.2. 호국의 심장: 사명대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표충사의 진정한 가치는 그 역사적 깊이에 있다. 이 사찰의 기원은 신라 무열왕 원년(654), 원효대사가 창건한 죽림사(竹林寺)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영정사(靈井寺)로 불리던 이 사찰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의 충혼을 기리면서 그 정체성이 완전히 새롭게 정립된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를 모시는 사당인 '표충서원(表忠書院)'에서 유래했다. 본래 밀양의 다른 곳에 있던 사당을 이곳 영정사로 옮겨오면서, 사찰이 사당을 수호하는 독특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표충사는 불교 사찰이면서 동시에 국가적 영웅을 기리는 유교적 성격의 서원을 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은 매년 봄과 가을에 봉행되는 향사(香祀)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 제례에는 불교의 스님들뿐만 아니라 성균관 유림(儒林)들이 함께 참여하는데, 이는 종교의 경계를 넘어 사명대사를 국가적 위인으로 추앙하는 한국 문화의 독특한 통합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행자가 이 사실을 알고 표충사를 방문한다면, 이곳이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불교의 자비와 유교의 충효(忠孝) 정신이 한 공간에서 만나 승화된,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명대사와 관련된 전설은 표충사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사명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둔 자리에서 모과나무가 자라났다는 이야기, 그리고 국가에 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비석에서 땀이 흘러내린다는 '표충비(表忠碑)'의 전설은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이 여전히 이 땅을 지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표충사는 단순한 고찰이 아니라, 국난 극복의 역사를 간직한 민족의 성지(護國聖地)인 것이다.  

1.3. 성보(聖寶)를 만나다: 국보와 보물의 전당

표충사는 수많은 성보를 품고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유물은 국보 제75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垸)'이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이 향로는 청동 표면에 은을 박아 넣어 무늬를 새기는 은입사(銀入絲) 기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섬세하고 유려한 선으로 새겨진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 갈대와 버드나무, 물새 무늬)은 고려 귀족 문화의 높은 예술적 수준을 증명한다.  

향완과 더불어 보물 제467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역시 표충사의 역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신라 흥덕왕 4(829)에 황면선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안정감 있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외에도 표충사에는 사명대사가 남긴 금란가사, 장삼 등 30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유물이 보존되어 있어, 위대한 호국 영웅의 숨결을 바로 곁에서 느낄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1.4. 방문객을 위한 정보

표충사를 방문하기 전,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 문의: 055-352-1150 (종무소)  
  • 입장료: 밀양시 공식 관광 정보에 따르면 성인 3,000, 청소년 2,000, 어린이 1,500원의 문화재 관람료가 있다. 다만, 일부 방문객들의 후기에 따르면 사찰 자체의 입장료는 폐지되고 주차료만 징수한다는 정보도 있어 , 방문 시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러한 정보의 차이를 인지하고 방문 계획을 세우는 것이 혼란을 줄일 수 있다.  
  • 주차료: 소형 2,000, 대형 5,000 (시간과 무관한 당일 요금
  • II. 영남알프스의 숨결: 재약산과 천황산 두 봉우리를 품다

표충사에서 영혼의 양식을 채웠다면, 이제 재약산의 육체를 온몸으로 느낄 차례다. 재약산 산행은 영남알프스의 웅장한 산세를 직접 경험하고, 정상에서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통해 자연과 하나 되는 과정이다. 특히 재약산은 인접한 천황산과 연계하여 하루에 두 개의 1,000미터급 봉우리를 오르는 '1 2'의 묘미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1. 두 개의 정상, 하나의 산

등산객들은 흔히 재약산과 천황산을 함께 이야기한다. 재약산의 주봉은 수미봉(須彌峰, 해발 1,119.1m 또는 1,108m)이며, 바로 옆에 솟은 천황산의 정상은 사자봉(獅子峰, 해발 1,189m)이다. 과거에는 천황산 일대까지 모두 재약산의 품으로 여겨졌을 만큼 두 산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두 봉우리는 '천황재'라는 아름다운 고개를 통해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많은 등산객이 자연스럽게 연계 산행을 즐긴다. 한 등산객의 후기에 따르면 천황산 정상의 조망이 360도로 시원하게 트여 있어 더욱 장쾌한 느낌을 주는 반면, 재약산 정상에서는 신불산 방면으로 펼쳐지는 경치와 발아래 사자평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한다. 이처럼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두 정상을 비교하며 걷는 것은 재약산 산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2.2. 당신의 길을 선택하세요: 난이도별 등산 코스 완벽 분석

재약산과 천황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등산객의 체력, 시간, 동행자에 따라 최적의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산의 큰 장점이다. 특히 얼음골 케이블카의 존재는 정상으로 가는 길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과거에는 강인한 체력을 가진 등산객들의 전유물이었던 1,000미터 고지의 풍경이 이제는 어린이나 노약자도 쉽게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이 되었다. 이는 정상 체험의 '민주화'라 할 수 있으며, 방문객은 고된 등반을 통한 성취의 여정과 편리한 접근을 통한 가족의 추억 사이에서 자신에게 맞는 산행 철학을 선택할 수 있다.

A) 초심자 및 가족을 위한 하늘길: 얼음골 케이블카 코스

  • 설명: 재약산과 천황산의 고산 풍경을 가장 쉽고 빠르게 만나는 방법이다. 국내 최장거리(1.8km)를 자랑하는 50인승 케이블카가 약 10분 만에 해발 1,020m의 상부 승강장까지 단숨에 데려다준다.  
  • 경로: 얼음골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 → ()샘물상회 터천황산(사자봉) → 천황재재약산(수미봉) → 천황재 → ()샘물상회 터상부 승강장 원점회귀.  
  • 특징: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가장 힘든 오르막 구간을 건너뛸 수 있어 등산 초보자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최적이다. 상부 승강장에서 천황산 정상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을 따라 40~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 , 최소한의 노력으로 영남알프스의 장쾌한 능선 조망을 만끽할 수 있다
  • B) 정통파 등산객의 길: 표충사 원점회귀 코스

  • 설명: 산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자신의 두 발로 정상을 정복하는, 가장 고전적이고 성취감 높은 코스다. 다른 코스에 비해 난이도가 높고 체력 소모가 크지만, 계곡의 비경과 산의 다채로운 식생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 경로: 표충사 주차장흑룡폭포/금강폭포층층폭포사자평/천황재재약산(수미봉) 또는 천황산(사자봉) → 원점회귀.  
  • 특징: 산행 초반에는 옥류동천 계곡을 따라 걸으며 흑룡폭포와 층층폭포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이후 진불암을 거치거나 사자평으로 향하는 길은 '된비알'이라 불리는 급경사 구간이 포함되어 있어 상당한 체력을 요구한다. 산행의 모든 과정을 즐기는 정통파 등산객에게 추천하는 코스다
  • C) 능선 종주자의 낭만: 배내고개 출발 코스
  • 설명: 영남알프스의 다른 봉우리들과의 연계 산행을 즐기는 장거리 등산객들이 선호하는 코스다. 출발점인 배내고개의 고도가 약 680m로 높은 편이고, 초반 상당 구간이 완만한 임도로 이루어져 있어 걷기에는 편하지만 전체 거리가 길다는 특징이 있다.  
  • 경로: 배내고개 주차장능동산 방향 임도 → ()샘물상회 터천황산(사자봉) → 천황재재약산(수미봉) → 원점회귀.  
  • 특징: 임도를 따라 걷는 동안 탁 트인 조망을 즐길 수 있으며, 능선에 올라서면 영남알프스의 광활한 산세를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걷기 자체를 즐기고, 긴 시간 동안 산에 머물고 싶은 등산객에게 적합하다.

1: 재약산·천황산 핵심 등산 코스 비교 가이드

코스명 출발점 총 거리 예상 시간 난이도 특징
얼음골 케이블카 코스 얼음골 케이블카 하부승강장 8.0 km (연계 시) 3~4시간 쉬움 가족 단위, 최소한의 등산으로 정상 조망 가능, 시간 절약  
표충사 원점회귀 코스 표충사 주차장 11~12 km 5~6시간 어려움 계곡과 폭포 경관, 급경사 포함, 등산의 참맛을 느끼는 정통 코스  
배내고개 출발 코스 배내고개 주차장 13.7 km 5~6시간 중급 능선 종주의 낭만, 장거리 코스, 탁 트인 임도길과 능선 조망  

III. 속삭이는 평원: 사자평 억새와 잃어버린 교실 이야기

재약산의 정상부가 힘과 기개의 남성적인 풍모를 보여준다면, 산의 동남쪽 사면에 드넓게 펼쳐진 사자평(獅子坪)은 모든 것을 품어 안는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고 서정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넘어, 생명의 보고이자 아련한 인간사의 흔적이 겹쳐진, 깊은 사유의 공간이다.

사자평을 방문하는 것은 마치 여러 겹으로 쓰인 양피지, 즉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를 읽는 것과 같다. 눈앞에는 바람에 따라 은빛으로 물결치는 억새의 바다가 펼쳐져 있지만, 그 아래에는 희귀 동식물이 살아가는 고산 습지라는 생명의 층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이제는 사라진 화전민 마을과 하늘 아래 첫 교실의 희미한 기억이 묻혀 있다. 한때는 인간의 삶이 지배했던 이 땅을 이제는 자연이 다시 뒤덮고, 그 위에 관광이라는 새로운 글씨가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 겹겹의 층을 이해할 때, 사자평 여행은 단순한 풍경 감상을 넘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시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3.1. 은빛 파도가 치는 바다: 사자평 억새 군락지

사자평은 밀양 8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압도적인 억새 군락지로 유명하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가 되면, 120만 평( 400  

m2)에 달하는 광활한 평원은 온통 은빛 억새꽃으로 뒤덮여, 햇살을 받을 때마다 거대한 은빛 바다가 출렁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은 '인생샷' 명당으로도 이름이 높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곳을 거닐며 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고 전해진다. 최고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억새밭 사이로 난 오솔길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억새들이 자연스러운 프레임이 되어주고, 역광을 이용하면 억새꽃 하나하나가 투명하게 빛나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특히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의 황금빛 햇살은 사자평을 가장 극적으로 만드는 마법의 시간이다.  

3.2. 하늘 아래 첫 습지: 재약산 산들늪의 생태학적 가치

사자평의 화려한 억새밭 아래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생태학적 심장이 뛰고 있다. 바로 '재약산 산들늪'으로도 불리는 '사자평 고산습지(獅子坪 高山濕地)'. 해발 750m 이상 고지대에 형성된 약 58  

m2 규모의 이 습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산지 습지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단순한 늪지가 아니라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습지 중심부에는 진퍼리새, 오리나무 군락과 같은 지표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멸종위기 식물인 노랑무늬붓꽃, 희귀식물인 꽃창포 등이 자생한다. 또한 이곳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삵, 하늘다람쥐, 그리고 국내 유일의 은줄팔랑나비 집단 서식지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인 매와 원앙, 소쩍새도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어, 사자평은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서 높은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3.3. 하늘과 가장 가까웠던 교실: 고사리 분교 이야기

오늘날 평화로운 억새와 습지의 땅 사자평에는 한때 80여 가구의 화전민들이 치열하게 삶을 일구었던 마을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오갈 곳 없던 이들이 해발 800m 고지에 모여들어 감자와 채소를 키우며 척박한 삶을 이어갔다. 아이들이 늘어나자 1966, '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가 문을 열었다. 학생들과 주민들은 이곳을 '고사리분교'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한 칸짜리 교실, 박카스 병에 꽂힌 채송화, 억새가 뒤덮인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던 하늘 아래 첫 교실. 이곳 아이들은 십 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1970년대 산업화의 물결은 이 고립된 산상 마을에도 밀려왔고, 주민들은 하나둘 도시로 떠나갔다. 학생 수가 줄어든 고사리분교는 개교 30년 만인 1996, 36명의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배출하고 문을 닫았다. 1999년에는 교사마저 철거되어 이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현재 고사리분교 터()에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교적비와 당시 심어졌을 단풍나무 두 그루만이 덩그러니 남아 억새 바람을 맞고 있다.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광활한 억새 평원 너머로 사라져간 한 시대의 애환과 아이들의 꿈을 떠올리며 깊은 상념에 잠긴다. 사자평의 아름다움은 이처럼 아련한 슬픔의 정서를 품고 있기에 더욱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IV. 자연의 신비: 폭포, 계곡, 그리고 얼음골의 수수께끼

재약산은 웅장한 산세만큼이나 다채롭고 신비로운 물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표충사 계곡을 따라 흐르는 힘찬 폭포수, 깊은 전설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소(), 그리고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기묘한 계곡은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예술 작품이자 과학 탐구의 현장이다. 이곳의 자연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온 전설과 과학적 원리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이야기꾼과 같다.

호박소의 이무기 전설을 들으며 고대인들의 자연관을 엿보고, 얼음골의 냉기를 느끼며 지구의 물리법칙을 체감하는 경험은 재약산 여행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든다. 이처럼 신화와 과학이 공존하는 재약산의 계곡과 폭포는 방문객에게 관찰을 넘어선 경이와 사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4.1. 옥류동천의 비경: 층층폭포와 흑룡폭포

표충사에서 재약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옥류동천(玉流洞天)이라는 아름다운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구슬 같은 물이 흐르는 신선의 계곡'이라는 이름처럼,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이 계곡은 두 개의 압도적인 폭포를 품고 있다.

등산로 초입에서 약 30~40분 정도 오르면 가장 먼저 '흑룡폭포(黑龍瀑布)' 전망대를 만난다. 홍룡폭포(虹龍瀑布)라고도 불리는 이 폭포는 검은 바위를 타고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마치 흑룡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망대에 서서 폭포의 기운을 느끼고 다시 10분 남짓 더 오르면, 옥류동천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층층폭포(層層瀑布)'가 그 위용을 드러낸다. 30m 높이의 절벽에서 2단으로 꺾이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사자평의 광활한 분지가 이 폭포의 수량을 뒷받침하기에, 사계절 내내 풍부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름철에는 시원한 물보라가 더위를 식혀주고, 가을에는 단풍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4.2. 이무기의 전설을 품은 호박소

밀양 8경 중 하나인 '시례 호박소(時禮 湖泊沼)'는 재약산이 품은 가장 신비로운 비경 중 하나다. 수십만 년 동안 쏟아지는 물줄기가 백옥 같은 화강암을 깎아내어 만들어낸 이 거대한 소()는 그 모양이 마치 곡식을 빻는 절구의 확(호박)과 같다 하여 '호박소'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박소는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깊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이곳은 극심한 가뭄이 들 때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였다.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의 벌을 받아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이 소에 살고 있는데, 더러운 것이 소에 들어오면 그것을 씻어내기 위해 조화를 부려 비를 내리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호랑이 머리와 같은 부정한 것을 소에 던져 억지로 비를 내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도 그 깊이를 잴 수 없었다는 전설은 호박소의 신비로움을 더욱 배가시킨다. 얼음골 케이블카 주차장에서 차로 불과 2~3분 거리에 위치해 접근성도 좋으며, 별도의 입장료나 주차료가 없어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다.  

4.3. 여름의 얼음, 겨울의 온기: 얼음골의 신비

재약산 북쪽 기슭에 자리한 '얼음골'은 이름 그대로 한여름에 얼음이 어는 신비로운 자연 현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 기묘함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얼음골의 신비는 상식을 뒤엎는다. 보통 3월 중순부터 바위틈에서 얼음이 보이기 시작해, 1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더위(7~8)에 얼음의 양이 절정에 이른다. 반대로 날씨가 서늘해지는 가을(처서 무렵)부터는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한겨울에는 오히려 바위틈에서 따뜻한 김이 피어오른다. 이 현상은 화산 활동으로 생긴 안산암 바위들이 무너져 쌓인 너덜겅 지대, '애추(Talus)' 지형 때문에 발생한다. 겨울철 차가운 공기가 돌무더기 사이의 빈틈으로 들어가 갇혔다가, 여름철 외부 기온이 올라가면서 상대적으로 차가운 내부 공기가 바위틈으로 새어 나오며 주변의 수증기를 얼리는 것이다. 겨울에는 반대로 여름 동안 데워진 공기가 방출되어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이 과학적 원리를 알고 방문하더라도, 8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에어컨 바람처럼 뿜어져 나오는 냉기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경이롭다. 방문객들은 한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꺼내 입고, 계곡물에 1분 이상 발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움을 느낀다.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릴수록 얼음골은 더욱 시원해져, 해마다 여름이면 수많은 피서객이 이 태고의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 찾아온다.  

V. 여정의 맛: 재약산 기슭의 맛과 멋

웅장한 산세와 신비로운 자연을 온몸으로 겪어낸 여정의 끝에는 든든한 음식과 편안한 휴식이 기다린다. 재약산 산행의 만족도는 산기슭에 자리한 맛집과 카페에서 어떻게 마침표를 찍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표충사와 얼음골로 향하는 길목에는 산행객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지친 다리에 쉼을 주는 보석 같은 공간들이 즐비하다.

이곳의 식당과 카페들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다. 그들은 재약산이라는 거대한 자연과 공생하며 여행 경험의 일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산에서 나는 신선한 나물로 차린 산채비빔밥,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건강 보양식, 창밖으로 펼쳐지는 계곡과 산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뷰 맛집' 카페들은 재약산 여행의 서사를 완성하는 필수적인 조연이다. 여행의 감동을 두 배로 만들어 줄, 산의 정기를 품은 맛과 멋의 공간들을 소개한다.

5.1. 산의 정기를 맛보다: 표충사·얼음골 대표 맛집

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표충사와 얼음골 주변에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맛집들이 포진해 있다.

표충사 근방

  • 고가식당(古家食堂): 이름처럼 고풍스러운 옛 기와집에서 정갈한 가정식 백반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방문객들의 평이 매우 좋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밀양의 맑은 물에서 자란 다슬기(또는 논고동)를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다슬기 회무침'과 구수한 '들깨탕'이다. 특히 밀가루 반죽 없이 부추와 오징어, 논고동으로만 가득 채운 '부추전'은 반드시 맛보아야 할 별미로 꼽힌다. 직접 담근 장과 정성 가득한 밑반찬은 시골 외갓집의 손맛을 떠올리게 한다.  
  • 소달구지: 질 좋은 한우를 맛보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큼지막한 갈빗대가 들어간 '한방 소갈비탕'과 신선한 '한우 육회비빔밥'은 등산 후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제격이다. 고기를 주문하면 진한 곰탕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식당 바로 옆에서는 30년 전통의 '수제 옥수수 찐빵'과 꽈배기를 함께 판매하고 있어, 식사 후 간식거리나 산행 중 비상식량으로 챙겨가기 좋다.  
  • 기타: 이 외에도 표충사로 향하는 단장면 일대에는 흑염소 불고기, 오리불고기, 산채비빔밥 등을 주력으로 하는 가든 형태의 식당들이 많아 취향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다.  

얼음골 근방

  • 시례정가든: 얼음골 케이블카가 보이는 좋은 전망을 가진 식당으로, 토종닭을 푹 고아낸 '백숙'이 인기 메뉴다. 관광지에 위치해 있지만 음식 맛이 좋다는 평이 많다.  
  • 가마솥에누룽지: 이름처럼 가마솥에서 조리한 백숙과 오리불고기가 유명하며, 특히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더덕 막걸리'는 산행의 피로를 씻어주는 특별한 맛을 선사한다.  
  • 기타: 얼음골로 이어지는 도로(얼음골로)를 따라 다양한 한식당들이 밀집해 있어, 케이블카 탑승 전후로 식사를 해결하기에 편리하다.  

5.2. 쉼표를 찍는 공간: 풍경을 담은 카페

강도 높은 산행 후, 혹은 아름다운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싶을 때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휴식을 제공한다. 재약산 주변에도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카페들이 여행객을 유혹한다.

  • 달리아커피 단장면점: 표충사 인근 단장면에 위치한 이 카페는 아찔한 절벽 뷰를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넓은 주차 공간과 실내외 좌석을 갖추고 있으며, 커피와 베이커리 모두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카페 딘(Cafe Dean): 영남알프스 배내골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자리 잡은 예쁜 카페로, 조용히 자연을 감상하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 카페 온더밸리(Cafe on the Valley): 얼음골 근처에 위치한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로, 밀양의 특산물인 사과를 활용한 메뉴와 탁 트인 뷰가 특징이다.  
  • 하늘정원카페: 얼음골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에 위치해 있어,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잠시 쉬어가며 천상의 풍경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접근성을 자랑한다.  

결론: 재약산,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재약산이 품고 있는 다섯 가지의 다채로운 얼굴을 함께 탐험했다.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이 서린 '영혼의 안식처' 표충사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재약산과 천황산 두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영남알프스의 거친 숨결'을 체험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노래와 잊힌 교실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속삭이는 평원' 사자평에서 사색에 잠겼으며, 한여름의 얼음과 이무기의 전설이 깃든 계곡에서 '자연의 신비'에 경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행의 여정을 풍요롭게 마무리하는 '산기슭의 맛과 멋'을 즐겼다.

이처럼 재약산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매력을 지닌 다섯 개의 세계가 공존하는 입체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성스러운 순례지를 찾는 구도자에게,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산악인에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탐구하는 생태학자에게, 잊힌 역사의 흔적을 좇는 이야기꾼에게, 그리고 삶의 쉼표를 찾는 미식가에게 각기 다른 만족과 영감을 선사한다.

이 가이드가 제시한 다섯 개의 얼굴은 재약산을 이해하는 다섯 개의 길일 뿐, 정답은 아니다. 진정한 여행의 완성은 당신이 직접 그 길을 걸으며, 당신만의 시선으로 재약산의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얼굴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이제 당신의 발걸음으로 재약산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차례다. 영남알프스의 심장은,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좋아요. 구독 감사합니다! 행복한 여행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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