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희양산(曦陽山)관광
산의 정수를 향한 여정: 괴산 희양산의 5가지 결정적 체험
서론: 빛나는 태양의 산
희양산(曦陽山)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그것은 지질학적, 정신적 선언과도 같다. 산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하나로 이루어진 듯한 독특한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흑운모 화강암으로 구성된 이 거대한 암봉은, 햇살을 받으면 눈부시게 하얗게 빛나 '빛날 희(曦)' 자와 '볕 양(陽)' 자를 써서 희양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이름은 단순히 외형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산이 품고 있는 신성한 기운을 암시한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장대한 능선 위에 자리한 희양산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있다. 해발고도는 자료에 따라 999m, 998m, 996m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지만, 이는 오히려 이 산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탐구의 흔적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이 안내서는 희양산이 지닌 복합적인 매력을 다섯 가지의 뚜렷한 렌즈를 통해 심도 있게 조명하고자 한다. 험준한 암벽을 오르는 육체적 시련의 등반로부터, 깊은 고요 속에 자리한 천년 고찰의 영적인 세계, 그리고 산자락 곳곳에 겹겹이 쌓인 역사의 메아리와 괴산 및 문경의 광활한 문화 경관과의 연결고리까지, 희양산을 체험하는 다섯 가지의 결정적 여정을 제안한다.
제1선: 등반 – 백두대간 능선 위 순례자의 길
희양산 등반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험준하고 신성한 풍경으로 들어가는 현대적 순례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이 육체적 시련을 통과한 자만이 산의 진정한 얼굴을 마주할 자격을 얻는다.
등반가의 딜레마: 봉암사의 장벽
희양산을 오르려는 등반객은 먼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산의 남쪽, 문경시에 속한 자락에는 엄격한 수행 도량인 봉암사가 자리 잡고 있다. 봉암사는 조계종 특별 수도원(선수련장)으로서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찰을 통한 등산로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통제는 거의 모든 등반객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괴산 방면으로 유도한다. 그런데 괴산에서 출발하는 대표적인 등산로인 은티마을 코스는 험준하고 기술적인 암릉 구간으로 악명이 높다. 즉, 희양산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육체적 도전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이 어려움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전제 조건인 셈이다. 이처럼 강제된 시련은 비종교적 의미의 정화 의식처럼 작용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온 관광객을 걸러내고, 오직 땀과 노력으로 정상에 도달한 이들에게만 장엄한 풍광을 허락한다. 등산로의 물리적인 문턱이 사찰의 영적인 문턱과 조응하며, 산의 신성한 성격과 일치하는 깊은 성취감을 등반객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대표 코스: 은티마을 원점회귀
괴산군 연풍면에 위치한 은티마을은 희양산 등반의 실질적인 관문이다. 마을 입구의 주차장(소정의 주차료 있음)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이용한 뒤, 마을과 사과 과수원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산행은 시작된다.
등산로는 보통 구왕봉(九王峰)을 거쳐 오르거나 희양산성(성터)을 통해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가 일반적이다. 특히 구왕봉을 경유하는 코스는 더욱 도전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코스의 백미는 험난한 로프 구간과 바위 지대다. 구왕봉에서 지름티재로 내려서는 구간은 여러 개의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암릉길로, 초심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등반의 클라이맥스다. '유격 훈련 밧줄 구간'이라 불릴 만큼, 8개에 달하는 밧줄 구간이 연이어 나타나며, 특히 마지막 8번째 로프는 가장 길고 경사가 심해 상당한 팔 힘을 요구한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직벽)을 오르는 짜릿함과, 거대한 바위들이 미로처럼 얽힌 '미로바위'를 통과하는 재미도 이 코스만의 특징이다.
보상: 정상의 파노라마
고된 산행의 끝에서 등반객을 맞이하는 것은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정상과, 괴산의 명산임에도 문경시에서 세운 정상석이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360도 조망은 모든 힘겨움을 잊게 할 만큼 장쾌하다. 눈앞으로는 대야산과 속리산 주능선이 거친 파도처럼 펼쳐지고, 주흘산, 조령산, 멀리 월악산의 실루엣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특히 이웃한 구왕봉에서 바라보는 희양산의 거대한 백색 암벽의 위용은 이 산행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희양산은 숙련된 등산객을 위한 산이다. 노출된 암릉과 절벽 구간이 많아 초심자는 반드시 경험자와 동행해야 하며, 산행 내내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희양산 대종주 (은티마을 원점회귀 코스)
구간 | 거리 (약) | 소요 시간 (약) | 난이도 및 특징 | 주요 지점 |
은티마을 → 호리골재 | 3.8 km | 1.5-2시간 | 완만한 숲길 | 은티펜션, 백두대간 희양산 표지석 |
호리골재 → 구왕봉 | 2.4 km | 1-1.5시간 | 가파른 오르막 | 호리골재, 구왕봉 정상(879m) |
구왕봉 → 지름티재 | 0.5 km | 30-40분 | 매우 험난함. 가파른 암릉 로프 구간 | - |
지름티재 → 희양산 정상 | 1.5 km | 1-1.5시간 | 최고 난이도. 수직에 가까운 로프 구간 다수 | 지름티재, 미로바위, 정상(999m) |
희양산 정상 → 성터 | 1.4 km | 30-40분 | 탁 트인 조망의 암릉길 | 희양산성 터 |
성터 → 은티마을 | 3.2 km | 1-1.5시간 | 완만한 하산길, 계곡 | 희양폭포 |
총계 | 약 12.8 km | 6-8시간 | 최상급 난이도 | - |
주: 위 정보는 등의 자료를 종합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개인의 체력과 기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제2선: 성역 – 천년 고독의 봉암사를 엿보다
희양산의 영적인 심장부인 봉암사(鳳巖寺)는 산의 중심에 자리하며 ,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희귀하고 의미 깊은 경험이다. 사찰의 오랜 세월에 걸친 고독과 수행의 전통이 그 가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가장 성스러운 땅: 엄격한 수행의 전통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879년), 지증대사 도헌(道憲)이 창건한 천년 고찰로, 통일신라 시대 선(禪) 불교의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희양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봉암사는 1947년 성철, 청담 스님 등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를 통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서원을 세우며 한국 불교의 새로운 수행 풍토를 이끈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1982년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되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는 공간으로 공식화되었다.
이러한 엄격한 폐쇄성은 봉암사의 신비감을 극대화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1년 중 364일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이 정책은 , 봉암사가 오직 스님들의 정진을 위한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한국의 다른 주요 사찰들이 연중 개방되는 것과 달리, 봉암사의 접근 불가능성은 그 자체로 희소성의 가치를 낳는다. 이로 인해 1년에 단 하루 허락되는 방문의 기회는 불자들과 문화 탐방객들에게 간절히 염원하는, 거의 신화적인 경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단 하루의 개방: 부처님오신날의 봉암사
봉암사의 굳게 닫힌 문은 매년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 단 하루만 일반에 열린다. 이 날 봉암사는 수많은 참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주차와 이동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날조차 사찰 경내에서 산으로 오르는 등산은 엄격히 금지된다.
경내에 들어서면 다른 사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일부 전각에는 현판(편액)조차 걸려 있지 않은데, 이는 수행에 방해되는 요소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거대한 규모의 선원(禪院)과 수많은 요사채는 이곳이 관광지가 아닌, 살아있는 수행 도량임을 웅변한다.
보물의 전당: 사찰의 예술에서 역사를 읽다
봉암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귀중한 문화재들을 품고 있다.
- 대사들의 탑과 비:
-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제169호): 9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상륜부(머리장식)가 온전히 남아있는 드문 사례로 그 가치가 높다.
- 극락전(보물 제1574호):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단층 건물이지만 겹처마 구조로 인해 외관상 2층처럼 보이는 독특한 양식을 가졌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피난 시절 원당으로 삼았다는 전설과 , 임진왜란의 화마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백운대 마애보살좌상: 아름다운 백운계곡에 위치한 이 마애불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 앞 반석을 돌로 두드리면 목탁 소리가 난다는 신비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제3선: 메아리 – 돌과 전설에 깃든 역사를 읽다
희양산은 신성한 공간인 동시에 세속의 역사가 치열하게 펼쳐진 무대이기도 하다. 산 정상의 성터와 산자락에 서린 전설들은 후삼국 시대의 갈등과 민족사의 비극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한다.
고지 위의 요새: 희양산성
희양산 정상 부근에서는 견고한 석성(石城)의 흔적인 희양산성을 만날 수 있다. 이 성은 신라 경순왕 3년인 서기 929년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 이는 한반도가 후삼국으로 분열되어 극심한 혼란을 겪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희양산성은 신라가 새롭게 부상하던 견훤의 후백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국경 지대의 험준한 산마루에 세운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험준한 고갯길의 통제권을 두고 두 나라 사이에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지 짐작하게 한다. 천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높이 1~4m에 이르는 성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과 축성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산의 전설: 견훤과 마의태자
희양산의 장엄하고 극적인 풍경은 그 자체로 서사시의 배경이 되기에 충분하다. 신라와 후백제,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라는 지리적 위치는 이곳을 국가적 갈등의 중심 무대로 만들었다. 특히 신라 말 고려 초 전환기의 가장 극적인 두 인물, 견훤과 마의태자의 이야기는 이 산과 주변 지역에 깊이 새겨져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희양산을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야망(견훤)과 비극(마의태자)이라는 민족적 정서가 투영된 역사적 캔버스로 만든다.
- 야망의 창업주, 견훤(甄萱):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희양산 인근인 문경 가은읍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어머니가 밤마다 찾아오는 신비한 존재(큰 지렁이 혹은 뱀)와 동침하여 그를 낳았다는 '야래자(夜來者) 설화'가 유명하다. 이는 비범한 영웅의 탄생 신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모티프다. 문경 가은읍의 금하굴(金下窟), 말바위(馬岩), 그리고 자신의 화살과 용마의 속도를 겨루었다는 전설 등은 거대한 역사적 인물을 지역의 구체적인 지리와 연결시키며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 비극의 왕자, 마의태자(麻衣太子):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의 이야기는 희양산에 깊은 비애를 더한다. 부왕이 신라를 고려에 넘기려 하자, 그는 끝까지 항복을 반대했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삼베옷(麻衣)을 입고 속세를 떠나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금강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슬픔의 여정이 이 지역을 통과했다고 구전된다. 아버지 경순왕이 피난길에 머물렀던 봉암사와, 아들 마의태자가 저항의 길을 떠나며 지나간 이 지역은 한 왕조의 몰락이라는 비극적 서사가 교차하는 무대가 되었다.
제4선: 풍경 – 괴산 구곡의 시적인 풍경
희양산의 거친 야성과 깊은 영성을 경험했다면, 이제 시선을 산자락 아래 계곡으로 돌려 자연과 철학이 어우러진 문화 경관을 만나볼 차례다. 괴산의 계곡들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선인들의 미학과 사상이 담긴 한 편의 시와 같다.
구곡문화: 아홉 굽이의 미학
'구곡문화(九曲文化)'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계곡을 따라 아홉 개의 절경을 정하고, 각각에 시적인 이름을 붙여 자신들만의 이상향을 가꾸던 독특한 문화다. 이는 중국 성리학의 태두인 주자(朱子)가 무이산에 은거하며 '무이구곡'을 설정한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구곡을 설정하는 행위는 주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자, 자연과 교감하며 학문을 연마하는 성찰의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 계곡들을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선인들이 남긴 철학적 텍스트를 읽는 행위와 같다. '경천벽(擎天壁, 하늘을 떠받치는 절벽)'이나 '은선암(隱仙岩, 신선이 숨어 지낸 바위)'과 같은 이름에는 유교와 도교적 이상이 녹아있다. 계곡의 입구(洞門)에서 시작하여 절경의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아홉 굽이의 여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잘 짜인 서사 구조를 이룬다.
두 계곡 이야기: 선유구곡과 화양구곡
괴산에는 대표적인 두 개의 구곡이 있다: 선유구곡(仙遊九曲)과 화양구곡(華陽九曲)이다.
- 선유구곡: 신선이 노닐던 계곡 청천면 송면리에 위치한 선유구곡은 '신선이 노닐던 아홉 굽이'라는 뜻을 지녔다. 대학자 퇴계 이황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아홉 달을 머물며 직접 구곡의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화양구곡의 남성적인 풍모에 비해, 선유구곡은 보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여성적'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9개의 절경은 제1곡 선유동문, 제2곡 경천벽, 제3곡 학소암, 제4곡 연단로, 제5곡 와룡폭, 제6곡 난가대, 제7곡 기국암, 제8곡 구암, 제9곡 은선암으로 이어진다.
- 화양구곡: 의리와 절개의 계곡 같은 청천면의 화양천을 따라 펼쳐진 화양구곡은 조선 후기 거물 정객이었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우암이 이곳에 은거하자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며 구곡의 이름을 붙였다. 계곡 곳곳에는 그의 정치적 신념과 삶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어, 그의 학문과 사상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제1곡 경천벽, 제2곡 운영담, 제3곡 읍궁암(효종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하던 바위), 제4곡 금사담(그의 서재 암서재가 있던 곳), 제5곡 첨성대, 제6곡 능운대, 제7곡 와룡암, 제8곡 학소대, 제9곡 파곶으로 구성된다.
두 계곡 비교 가이드
구분 | 선유구곡 | 화양구곡 |
이름의 의미 | 신선이 노닐던 곳 | 빛나는 태양의 계곡 |
관련 인물 | 퇴계 이황 | 우암 송시열 |
전체적 성격 | 여성적, 신화적, 자연적 | 남성적, 역사적, 정치적 |
핵심 유적 | - | 암서재 (송시열의 서재) |
대표 절경 | 제5곡 와룡폭포 | 제4곡 금사담과 암서재 |
제5선: 옛길 – 문경새재에서 시간 속을 걷다
희양산의 야성과 영성을 체험한 여정의 마지막은 그 역사적 동맥이라 할 수 있는 문경새재로 이어진다. 이곳은 희양산과는 또 다른, 보다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역사를 체험하게 해주는 보완적인 여행지다.
위대한 고갯길: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한양과 영남 지방을 잇는 가장 중요한 길목인 영남대로(嶺南大路) 상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의 '새재(鳥嶺)'라는 이름은 과거 이 길이 얼마나 험준했는지를 말해준다.
이곳에는 임진왜란의 교훈을 바탕으로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축조된 3개의 관문, 즉 제1관문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 조령관(鳥嶺關)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보존된 길: 현대적 개입의 이야기
오늘날 우리가 걷는 문경새재의 아름다운 흙길(황톳길)은 놀랍게도 현대적인 결단의 산물이다. 1978년, 이 역사적인 길을 포장하려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여 "옛길을 포장하면 보존 관리가 어려우니 그대로 보존하고, 일대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라"고 직접 지시하면서 포장 계획은 중지되었다.
이 결정 덕분에 문경새재는 인위적인 개발을 피하고,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다. 희양산의 거칠고 날것 그대로의 등산로와는 대조적으로, 문경새재의 길은 넓고 완만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이곳은 자연 방치의 결과물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보존되고 관리된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이다. 옛길박물관, KBS 사극 촬영장, 전동차와 같은 편의시설은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역사를 산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즉, 문경새재는 희양산이 제공하는 원초적인 역사 체험과는 다른, 잘 기획되고 다듬어진 역사 문화 체험을 선사하는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고갯길을 따라 걷다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 이어지는 약 6.5km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역사 유적을 만날 수 있다. 광화문과 사대부 가옥 등을 재현한 KBS 사극 촬영장을 지나면 , 과거 공무 여행자들의 숙소였던 '조령원 터'가 나타난다. 또한 신임, 구임 경상감사가 관인을 주고받던 '교귀정'과 , 국내에 몇 남지 않은 조선 시대 한글 비석인 '산불됴심' 비도 볼 수 있다.
결론: 다섯 개의 여정, 하나의 산
이 안내서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여정은 희양산이 단일한 목적지가 아니라, 풍부하고 다층적인 매력을 지닌 하나의 거대한 권역임을 보여준다. 험준한 봉우리를 오르는 육체적 도전, 천년 고찰의 깊은 영성, 돌과 전설에 아로새겨진 극적인 역사, 선비의 미학이 깃든 계곡의 풍경,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옛길의 정취까지.
희양산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면모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육체적, 정신적, 역사적, 문화적 모든 차원에서 깊이 있는 탐험을 즐기는 '문화적 탐험가'에게 희양산은 그 어떤 산보다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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